공신문서·실록·의궤…한눈에 보는 조선왕실 명품 기록유산

김윤영 기자 / 기사승인 : 2021-11-16 16:07:33
  • -
  • +
  • 인쇄
한중연 장서각 40주년 특별전…"역사적 인물 삶 스민 보물들"

▲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 보는 관람객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열린의정뉴스 = 김윤영 기자] 길이 20m가 넘는 고운 직물에 가지런히 쓴 글씨를 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정성 들여 만든 장식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지난 2월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된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다. 조선 숙종 20년인 1694년 임금에게 충성을 맹세하던 의식인 회맹제(會盟祭)를 치르고 공신과 후손 489명 명단을 적은 문서로, 역사학과 미술사학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유물로 평가된다.

 

워낙 길어서 일반인이 전체를 볼 기회가 좀처럼 없었던 이 문화재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전시실에 펼쳐졌다. 진열 공간의 한계로 인해 마지막 부분 일부는 여전히 축에 말린 상태였지만, 유물의 아름다움은 온전히 전해졌다.

 

최근 장서각에서 만난 하은미 한중연 연구원은 "이름 중에 조상이 있는지 찾아보라"며 "왕이 보기 위해 만든 문서라 잘못 쓴 글자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중연은 장서각 설립 40주년을 맞아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를 비롯해 장서각이 보유하고 관리하는 국가지정문화재 36건과 시도지정문화재 9건을 거의 모두 선보이는 특별전 '장서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을 지난달 22일 개막했다.

 

장서각(藏書閣)은 조선왕실 자료를 모은 국가 도서관이었다. 현재 한중연 장서각에는 정조가 설치한 규장각 시설인 봉모당,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사고(史庫) 중 하나인 무주 적상산사고, 왕이나 왕으로 추존된 인물을 낳은 후궁 7명의 신위를 모신 칠궁 등에 있던 기록유산과 후대에 민간에서 수집한 자료가 있다.'

 

봉모당 소장품이었던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는 숙종이 정권 교체라고 할 수 있는 '환국'을 어떻게 했는지 보여주는 기록물이다.

 

박용만 한중연 수석연구원은 도록에서 "이 회맹축은 1680년 녹훈(錄勳·훈공을 문서에 기록함)된 보사공신이 1689년 삭훈(削勳·훈공이 삭제됨)됐다가 1694년 회복되며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숙종 연간에 남인과 서인은 실각과 집권을 거듭했다. 서인은 1680년 경신환국을 통해 득세했으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축출됐고 1694년 갑술환국 이후 다시 주도권을 잡았다. 회맹축은 이러한 정치적 격변이 투영된 산물이다.

 

이민주 한중연 책임연구원은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짜는 직물은 폭이 30∼35㎝인데, 회맹축에 사용한 비단 직물은 71㎝로 매우 넓다"며 "완벽한 형식과 내용을 갖춘 어람용(御覽用·임금이 보는 용도) 문서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고 강조했다.'

 

전시에는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의궤, 동의보감, 월인천강지곡처럼 유명한 기록유산은 물론 정조 친필, 초상화 등 다채로운 문서와 회화가 나왔다.

 

장서각의 조선왕조실록은 봉모당에 있던 봉모당본 6책과 적상산사고본 3책이 있다. 두 종의 표지를 비교하면 봉모당본이 더 신경 써서 만든 책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적상산사고본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이 반출해 국내에는 없다고 알려져 왔다. 그런데 장서각에는 '성종실록', '인조실록', '효종실록'이 한 권씩 남았다.

 

이에 대해 박 연구원은 "이 자료들은 인쇄 과정의 실수로 먹물 농도가 일정하지 않고, 잘못 인쇄된 글자를 다시 찍어 오려 붙인 곳이 비뚤어져 있기도 하다"며 "잘못 찍은 낱장을 모은 산엽본(散葉本)"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적상산사고 소장본이라는 도장이 없어 원래 적상산사고본이 아니었으며, 후대에 여러 곳의 자료가 장서각으로 취합되는 과정에서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국보로 지정된 동의보감도 적상산사고에 있던 책이다. 1613년 나무로 만든 활자로 인쇄한 초판본이며, 25권 25책 완질이다. 동의보감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여러 차례 출판된 인기 서적이었다고 한다.'

 

보물인 '정조어필'은 정조가 1798년에 낸 어제(御題·임금이 낸 글의 제목)의 뜻을 유생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자 학문 수준을 질책하며 쓴 글이다. 가로 210㎝, 세로 112㎝인 커다란 종이 곳곳에 잘못 쓴 부분을 먹으로 지워 버린 흔적이 있어 흥미롭다.

 

박 연구원은 "정조 말년의 다른 어필(御筆·임금이 쓴 글씨)에 비해 필치가 활달하다"며 "인재 선발을 위한 정조의 고심과 신념이 잘 드러나 있다"고 평가했다.

 

초상화는 한데 모아 전시해 그림 형식과 화풍을 비교하도록 했고,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불교 경전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를 본 문화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소개되지 않은 귀중한 문화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역사적 인물의 삶이 스며 있는 보물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서각은 15일부터 평일뿐만 아니라 토요일에도 전시실 문을 열기로 했다. 또 다음 달 17일로 예정된 전시 종료일을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저작권자ⓒ 열린의정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