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중국 북부 장악한 금나라 시조는 신라계 고려인"

김윤영 기자 / 기사승인 : 2021-11-18 16: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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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전사들의 황금제국 금나라' 출간

▲ 중국 금나라 호랑이 모양 베개 [국립중앙박물관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열린의정뉴스 = 김윤영 기자] 오늘날 중국은 한족(漢族) 중심 국가이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10세기 이후 북방 민족의 침입을 지속해서 받았다. 몽골족이 13세기에 세운 원나라는 중국을 포함해 거대한 영토를 다스렸다.

 

원나라 이전에 중국 북부와 만주 일대를 호령한 민족은 여진족이었다. 아골타(阿骨打·아구다)는 여진 세력을 통합해 1115년 금나라를 건립했고, 거란족의 요나라를 제압했다.

 

그런데 금나라 역사를 정리한 '금사'(金史)를 보면 국가 시조가 고려 출신이라는 내용이 있다. 금사는 "금 시조의 존함은 '함보'(函普)이며 고려에서 막 왔을 때 나이가 이미 60여 세였다"고 기록했다.

 

김인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재단이 펴낸 신간 '전사들의 황금제국 금나라'에서 한국과 중국 문헌을 고찰해 "함보는 신라계 고려인"이라고 주장한다.

 

김 위원은 우선 동아시아에서 국가별로 함보를 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짚는다.

 

그는 "일본 학자들은 함보를 허구적 인물로 간주했지만, 한국은 함보가 실존했으며 신라 혹은 고려에서 왔다는 설을 지지했다"며 "중국에서는 함보의 실재 여부와 출신지를 두고 여러 견해가 제기됐으나, 전반적으로는 '고려에서 온 여진인'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한다.

 

김 위원은 우리나라 역사서 '고려사'와 '금사', 남송 역사가의 개인 저작인 '송막기문'과 '신록기'를 두루 검토해 금나라 시조의 이름과 가족 관계에 관한 기술이 조금씩 다르지만, 출신국은 모두 고려나 신라로 적었다고 강조한다.

 

이어 "함보 이야기는 말로 전승되다가 문자로 정착했으며, 제보자도 달랐다"며 "편찬자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금 시조가 한반도에서 출발해 여진 완안부로 가서 여진 사회에 정착했다는 점은 유사하다"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출신지가 신라와 고려로 갈린 이유는 함보가 이동한 시기가 920∼930년 무렵이었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이때는 918년 건국한 고려와 935년에 망한 신라가 공존한 시기다.

 

김 위원은 "함보라는 이름은 여진어 작명법과 맞지 않으며, 신라의 인칭 접미사 '보'를 쓴 것으로 보아 신라인임을 알 수 있다"며 "고려사에 따르면 함보는 현재 황해도 평산인 평주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당시 고려에 정복된 지역이었으므로 그는 신라계 고려인"이라고 주장한다.

 

책에는 금나라 시조와 정통성 문제뿐만 아니라 여러 연구자가 금나라의 대외 관계, 외교 전략, 군사력, 한족 관료 기용 양상 등에 관해 정리한 글이 실렸다.

 

윤영인 영산대 교수는 금나라 멸망 원인을 왕조 부패와 한족 문화 동화에서 찾는 기존 견해를 소개하고 "금나라가 몽골 흥기로 균열하기 시작한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전략적 실책이 크게 작용했다"고 지적한다.

 

김 위원은 서문에서 "금나라는 한족 조상을 훔쳐 온 이전의 북방 왕조와 달리 종족적 한계를 정면 돌파하고자 했다"며 "비한족 정권도 정통이 될 수 있다는 관념의 변화를 통해 당당히 정통 왕조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관료제 구축, 군사력과 경제력 확보, 종교 제도 확립 등 여러 측면에서 거란보다 진일보한 면을 보였으나, 폭력적 방법으로 여진 습속을 강요하고 한족에 차별 정책을 시행하는 등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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